
작가 소개
이한범은 광주를 기반으로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로, 선명한 색채와 또렷한 윤곽, 장면처럼 구성된 이미지를 통해 인물 중심의 회화를 선보인다. 오랜 만화에 대한 애정과 화가 어머니의 영향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유머와 도덕적 상상력, 낙관성을 담아내며, 서사의 완결보다는 감정적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로 관람자를 이끈다. 시카고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뉴욕과 미국 동부의 미술 현장을 경험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동시대 미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한 그는 2020년 이후 다시 회화에 집중하며 용기, 에너지, 정서적 개방성으로 생동하는 고유한 시각 세계를 구축해왔다. 서울과 광주에서 이어지는 그의 전시는 이러한 세계를 확장해 나가며, 관람자에게 명료함과 온기, 그리고 즐거움의 순간들을 제안한다.
나의 이야기
나는 1985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리야드와 미국 세인트루이스, 서울, 샌디에이고를 오가며 보냈고, 이후 전주와 광주에서 성장했다. 그 이동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던 것은 그림이었다. TV에서 보던 캐릭터들, 특히 배트맨을 따라 그리며 끝없이 인물과 이야기를 종이에 채웠다. 어머니께서는 한국화로 작업을 시작해 현재는 캔버스에 아크릴로 작업하는 화가이시며, 나는 어머니를 통해 예술이 삶의 일부라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신의 장래 모습을 티셔츠에 그리는 과제에서 나는 손에 붓과 팔레트를 든 남자를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적었고,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학교생활기록부의 희망 진로란에는 늘 만화가나 애니메이터만 적혔다.
나는 시카고의 드폴 대학교(DePaul University)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그곳에서의 실기 수업과 현대미술 강의들은 회화를 일생에 걸쳐 추구할 수 있는 작업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에는 미술관 번역 일을 통해 생계를 이어갔는데, 이는 예상치 못하게 14년에 걸친 경력이 되었고, 미술계와 긴밀히 연결된 상태에서 계속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그와 동시에 하버드 서머 스쿨에서 수학하고, 베이징과 뉴욕, 런던, 파리, 베니스, 베를린, 카셀, 뮌스터 등을 오가며 체류했으며, 로스앤젤레스의 SCI-Arc에서 건축과 시각문화를 탐구하는 등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또한 어머니의 권유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 석사 과정에 진학해, 동시대 미술에 대한 보다 탄탄한 토대를 다졌다.
2020년, 팬데믹으로 번역 작업이 멈추면서 비로소 나는 회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해 나는 100호 캔버스 49개 분량의 작업을 하며,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릴 때 느꼈던 기쁨과 자신감을 다시 발견했다. 이 전환점을 계기로 새로운 작업들이 이어졌고, 2022년에는 서울과 광주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나는 광주에 거주하며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으며,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환경에서 작업하기 위해 서울로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회화를 통해 관람자가 단순하고도 진실하게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술이 잠시나마 열린 마음, 유머, 혹은 도덕적 명료함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2026년 1월